| 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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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본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언어가 그 중 하나입니다. 우리 조상이 과거로부터 쌓아온 것이 모여 언어가 됐습니다. 과학도 논리와 증명이 모여 새로운 이론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거치죠. 과거와 오늘의 협력이 내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믹 에블링 낫임파서블재단(Not Impossible Foundation) 설립자이자 에블링그룹 CEO는 오픈소스에 기반을 둔 과거와 오늘의 협력이 내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아이캔 프로젝트(EyeCan Project)’팀 팀원인 유경화씨는 “기대하지 않은 협력”을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믹 에블링 CEO와 삼성전자 아이캔 프로젝트팀 팀원 5명이 오픈소스와 협력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서울디지털포럼(SDF) 2013′에서 머리를 맞댔다.


올해 SDF 주제는 ‘초협력’이다. SDF 2013에서는 협력과 협력이 만들어가는 협력의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를 5월2일부터 3일까지 풀어낼 예정이다. 첫날 연설에 믹 에블링 CEO가 참석했다. 믹 에블링 CEO는 눈동자로 글자를 입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이라이터(Eye Writer)’ 장치를 개발한 인물이다. 아이라이터에서 영감을 받은 5명의 삼성전자 직원들은 ‘아이캔’을 개발했다. 아이캔은 아이라이터에 기능을 추가해 눈으로 컴퓨터를 조작하도록 고안된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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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 에블링 낫임파서블재단 설립자 겸 에블링그룹 CEO


오픈소스가 낳은 ‘아이라이터’와 ‘아이캔’


아이라이터는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펜에 글씨를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종이에 펜을 붙이고 떼는 과정을 눈 깜빡임을 통해 구현했다. 전신마비 환자가 대화하는 데 쓰도록 개발됐다. 믹 에블링 CEO가 지난 2008년 루게릭병으로 전신마비를 앓게 된 그라피티 예술가 템트(TEMPT)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믹 에블링 CEO는 “예전부터 쓰던 눈 깜빡임으로 글자를 입력하는 방식이 아직도 전신마비 환자들의 대화 수단”이라며 “기존 방식이 너무 불편하다고 생각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로 템트와 약속했다”라고 밝혔다.


아이라이터를 구성하고 있는 부품은 단출하다. 얼굴에 쓰는 안경테와 웹캠, 전원 선이 전부다. 웹캠이 눈동자의 움직임과 깜빡임을 인식하면, 스크린에 있는 글자가 입력되는 방식이다. 글자를 오래 보고 있으면, 알파벳을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선택한 알파벳으로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 수 있다. 템트는 아이라이터의 도움을 받아 전신마비 상태에 빠진 이후 7년 만에 다시 그라피티를 그릴 수 있었다. 가족, 친구들과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됐음은 물론이다.


믹 에블링 CEO는 아이라이터를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기획했다. 루게릭병 환자 템트뿐만 아니라 필요한 모든 이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믹 에블링 CEO는 “페이스북이나 스카이프 등 하나의 글로벌 브레인을 구축해 협업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라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오픈소스와 DIY(Do It Yourself)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루게릭병은 증세가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병이다. 템트도 언젠가는 눈을 깜빡이는 동작도 못 하게 될 수 있다. 그런 환자를 위해 현재 믹 에블링 CEO는 뇌파를 이용해 생각하는 것을 대화로 옮길 수 있는 이른바 ‘브레인 라이터(Brain Writer)’를 개발 중이다. 오픈소스와 협력이 가꾼 도구의 진화다.


삼성전자 창의공학연구소의 아이캔 프로젝트는 믹 에블링 CEO의 아이라이터에서 영감을 받았다. 눈동자를 통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아이라이터를 개량해 눈으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아이캔 프로젝트는 이 같은 물음에서 시작됐다. 아이라이터가 오픈소스 방식으로 제작됐으니, 아이캔도 오픈소스로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아이라이터를 보고 추가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기능이 바로 마우스 기능입니다. 클릭이나 더블클릭 기능을 더해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도록 말이죠. 2011년 4월 처음 믹 에이블 CEO의 연설을 보고 아이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상원 삼성전자 아이캔 프로젝트팀 팀원은 “전국에 있는 3만여명의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해 아이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라며 “무엇보다 엔지니어로서 재미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에 프로젝트를 이어왔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사내 게시판에서 동료를 구하는 것으로 시작된 아이캔 프로젝트는 현재 삼성전자 창의공학연구소 공식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다. 아이캔 프로젝트의 소스코드는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아이캔 장비 보급사업과 사용 설명서 등 아이캔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가 모두 공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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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창의공학연구소 ‘아이캔 프로젝트 팀’과 믹 에블링 CEO(가장 오른쪽)


오픈소스로 모두가 협력하는 ‘낫임파서블랩’


믹 에블링 CEO는 이날 SDF 2013 연설을 통해 ‘낫임파서블랩(Not Impossible Lab)’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소개했다. 낫임파서블랩은 엔지니어와 인문학자, 과학자와 사회학자가 협력해 누구나 쓸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도록 하는 일종의 프로젝트 모음집이다. 아이라이터나 아이캔, 브레인라이터와 같이 필요한 이들은 무료로 쓸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믹 에블링 CEO는 “아이라이터와 아이캔 프로젝트는 첫 번째 단계고, 브레인 라이터는 두 번째 걸음”이라며 “지금은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믹 에블링 CEO가 낫임파서블랩 프로젝트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협력이다. 서로 다른 분야에 있는 이들이 머리를 모아 제2, 제3의 아이라이터를 개발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낫임파서블랩 프로젝트는 협력을 통해 만들어 나가는 협력의 생태계인 셈이다.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낫임파서블랩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접속해 자신의 관심 분야를 선택하면 된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편이 좋다. 그래야 다른 이들과 팀을 짤 수 있을 테니까. 믹 에블링 CEO가 농담조로 설명한 것처럼 마치 온라인 데이팅 웹사이트처럼 이용하면 된다. 이날 함께 연설무대에 오른 삼성전자 아이캔 프로젝트 팀원 5명은 낫임파서블랩 프로젝트의 첫 번째 회원이 됐다.


낫임파서블랩 프로젝트는 오픈소스와 뜻밖의 도움이 주는 가치를 믿는다. 누구나 낫임파서블랩에 접속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설정하면, 관심 있는 이들이 모이는 구조다. 누가 어떤 분야에 모여 무엇을 만들게 될지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뜻밖의 만남을 기대하는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와 비슷하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향한 예상 하지 못한 협력이 아이캔을 디자인하고, 아이캔을 보급했던 것처럼 낫임파서블랩 프로젝트에서도 ‘뜻밖의 지원’이 이어지길 기대해보자.


믹 에블링 CEO는 “현재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미래에는 가능하다”라며 “섣불리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인간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낫임파서블렙은 협력을 통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실험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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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임파서블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