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용 기자  yong2@zdnet.co.kr
 

2015년은 IT 역사의 변곡점이다. 상용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의 대결구도가 무너지고, 오픈소스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이 완전히 재편됐기 때문이다.

상용 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대립 구도를 상징했던 마이크로소프트, 레드햇의 전격적인 화해가 작년 이뤄졌다. MS와 레드햇의 협력은 시대를 구분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볼 만하다.

MS와 범 리눅스 진영의 밀착으로 윈도와 리눅스의 경계가 허물어지게 됐다. 닷넷을 리눅스에서 사용하고, 리눅스 앱을 윈도에서 사용하게 됐다.

한편에선 애플이 프로그래밍 언어 스위프트를 오픈소스로 전환했다. OS X과 iOS에 묶여 있던 애플의 생태계가 모든 생태계로 퍼져나갈 기회를 얻었다.

오랜 오픈소스 옹호론자들은 작년을 ‘소프트웨어 전쟁에서 오픈소스와 리눅스가 최종 승리한 해’라고 표현한다. MS가 리눅스를 받아들였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리눅스와 오픈소스 없이 작동할 수 없을 정도다.

세계 대부분의 네트워크 장비는 이미 리눅스 천지다. 인터넷 서비스 대부분이 리눅스와 오픈소스로 작동한다. 수많은 빅데이터 기술이 리눅스와 오픈소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된다. 사물인터넷 시대 기반 디바이스도 리눅스와 오픈소스의 판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리눅스 기반의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 세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집과 사무실에선 윈도를 써도 더 많은 시간을 리눅스를 쓴다. 애플의 iOS와 OS X도 오픈소스 유닉스에서 출발했다.

2014년 10월이었다. MS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는 미디어행사에서 “MS는 리눅스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때까지 사람들은 MS를 믿지 않았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시대 MS를 악마의 제국이라 여겼던 진영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MS가 닷넷을 오픈소스로 전환한데 이어 리눅스용 닷넷코어를 내놓고, 애저 클라우드에서 데비안 GNU/리눅스를 지원하고, 수세와 우분투를 지원하고, 윈도서버 차기 버전에서 도커 리눅스 컨테이너를 지원하고, 심지어 자체 리눅스 배포판인 ‘애저 클라우드 스위치’까지 개발했다는 사실이 정신없이 노출됐다. 얼마전 리눅스 자격증까지 선보였다.

MS가 리눅스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의견도 많다. 상징적으로 MS가 안드로이드OS 기기 제조사를 특허로 압박하는 걸 든다. MS는 안드로이드 기기 제조사에게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로열티를 받는데, 이중 310개가 리눅스 관련 특허다. MS는 리눅스 관련 특허로 삼성전자에게 연간 10억달러의 수입을 거둬들인다.

MS의 이같은 태도를 차치하고, MS가 오픈소스를 활용함으로써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는 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MS CEO가 리눅스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외면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MS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MS는 윈도를 비롯한 상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오픈소스 개발방법론을 적용했다. MS의 여러 개발담당 임원들이 사내에서 오픈소스 정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애플은 오늘날 MS보다 더 많은 상용소프트웨어를 가진 회사다. 폐쇄성의 상징인 애플 덕에 MS가 개방적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을 정도다.

그런 애플이 스위프트란 언어를 오픈소스로 내놓고, 스위프트를 리눅스에 올리는 작업까지 완료해줬다.

애플이 외부에 잘 알리지 않지만, 회사 내부적으로 오픈소스와 리눅스를 활발히 사용해온 게 애플이다. 시리를 비롯해 데이터 분석과 각종 사용자 대상 서비스용 플랫폼을 오픈소스로 전환하고 있다. 세계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웹브라우저 ‘크롬’은 애플의 참여로 만들어진 웹킷 엔진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세계의 IT흐름을 완전히 바꿔버린 퍼블릭 클라우드의 대명사 아마존웹서비스는 어떤가. 아마존웹서비스는 레드햇엔터프라이즈리눅스(RHEL) 코드의 변형으로 만들어졌다. 리눅스 기반의 AWS가 세계 각지의 스타트업과 인터넷 서비스의 기반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MS, 애플, 구글, AWS, 페이스북 세계 IT시장을 주도하는 공룡들이 리눅스와 오픈소스의 강력한 사용자다. 이들은 구글을 필두로 단순 사용자의 수준을 넘어 기여자로 변모하고 있다.

애플이나 MS가 자신들의 소프트웨어제품을 오픈소스로 전환하는 건 보기 어려울 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오픈소스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오픈소스화 흐름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걸 시사한다.

우선 오픈소스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MS가 윈도 생태계를 리눅스 진영에 밀어넣지 않으면, 전체 IT시장의 극히 일부만 차지하다 사멸하게 된다. 애플이 오픈소스 진영을 우군으로 만들지 않으면 자랑스러운 앱스토어 생태계를 스스로 정체시키게 된다.

가장 큰 시사점은 소프트웨어 제품으로 돈 벌던 IT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로 IT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완성된 제품을 만들어 출시해 라이선스를 판매하던 사업모델이 정체기를 맞이 했다. 회원으로 가입해 필요할 때 사용하는 서비스가 제품의 영역을 잠식했다.

서비스의 성패는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운영 능력, 사업 능력 등의 종합에 달렸다. SW제품을 무얼 썼느냐는 중요치 않다. 서비스를 좀 더 좋게 만들고, 더 많은 사용자를 모은다면 어떤 것이든 활용할 수 있다.

구글이 작년말 공개한 머신러닝 플랫폼 ‘텐서플로’는 서비스 사업모델에서 오픈소스 전략 효용성을 보여준다.

구글이 수많은 인재를 투입해 만든 머신러닝 기술 덕에 더 많은 회사와 개발자가 머신러닝 세계에 진입하기 쉬워졌다. 더 좋은 머신러닝 기술이 텐서플로를 참고해 만들어질 수 있다. 더 많은 머신러닝 전문가가 텐서플로로 키워진다. 수많은 머신러닝 관련 기업이 나타난다. 구글은 그렇게 커진 머신러닝 생태계를 활용해 서비스를 개선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

상용과 오픈소스의 전쟁 시대가 끝나간다. 다음 시대는 오픈소스의 시대인가. 아니다. 서비스의 시대다. 오픈소스냐 상용이냐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