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 기자  sini@zdnet.co.kr 
 
"GNU(그뉴)란 'GNU는 유닉스가 아니다'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인 'Gnu is Not Unix'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첫자를 따서 만든 약어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5년 3월. '닥터 돕스 저널'에는 흥미로운 글이 한 편 실렸다. 훗날 'GNU 선언'으로 널리 알려진 이 글의 필자는 리처드 스톨만이었다. 스톨만은 이 글을 통해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해 격한 어조로 조목 조목 짚어 나갔다.
 
이 글에서 스톨만은 "시스템을 변경할 필요가 있는 이용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이용자들은 이제 더 이상 소스코드를 갖고 있는 한 프로그래머나 회사의 손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리처드 스톨만. <사진=씨넷>

하지만 이 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단어는 바로 '그누'이다. 스톨만이 이 글을 통해 "그누는 유닉스가 아니다(GNU’s Not Unix)"는 당돌한 선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톨만의 이 선언은 카피레프트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출발 신호나 다름 없었다. 리눅스로 대표되는 오픈소스 운동 역시 길게 보면 ‘그누 선언문’에 그 젖줄을 대고 있다. 
 
■ 1982년 유닉스 상용화에 반기  
 
리처드 스톨만의 '그누 선언문'을 이해하기 위해선 197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그 무렵 미국 거대 회사였던 AT&T는 벨연구소를 중심으로 유닉스란 컴퓨터 운영체제를 개발했다. 벨연구소는 유닉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UC 버클리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 몸 담고 있는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협업이 가능했던 건 AT&T가 1956년 미국 법무부와 맺은 협약 때문이었다. 당시 AT&T는 법무부의 반독점 조사를 더 이상 받지 않는 조건으로 상업적 활동을 제한하는 데 동의했다. 쉽지 않았던 협업이 가능했던 건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AT&T는 1982년에 분할된다. 그러자 더 이상 반독점 족쇄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AT&T는 유닉스를 더 이상 자유롭게 놔두지 않았다. 외부에서 도움 받은 소스코드는 빼버린 뒤 판매를 시작한 것.  
 
AT&T의 이 같은 조치는 수 많은 자유소프트웨어론자들을 격분시켰다. 당시 20대 후반 나이로 MIT 인공지능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스톨만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스톨만은 1983년말 유닉스를 대체할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뉴스그룹을 만들었다. 그리곤 MIT에서 나온 뒤 1984년에 ‘그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누는 유닉스가 아니다"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누 선언문'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 리누스 토발즈. <사진=씨넷>

미국의 문화잡지인 '뉴요커'는 이런 사연과 함께 오픈소스 운동의 산실이 된 '그누 선언문' 30주년을 기념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뉴요커는 이 기사에서 스톨만이 '그누 선언문'을 쓰게 된 과정과 이후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GNU 선언문'을 게재한 지 몇 개월 뒤 스톨만은 자유소프트웨어연맹을 결정했다. 스톨만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유소프트웨어연맹 회장 자리를 맡고 있다. 
 
스톨만의 'GNU 선언문'은 카피레프트 운동의 중요한 초석 중 하나가 됐다. 1989년 GNU GPL 소프트웨어 라이선스가 원조 역할을 한 카피레프트는 '자유롭게 가져다 쓰되, 도움을 받아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똑 같이 공유한다'는 기본 철학을 담고 있다.  
 
저작권법에서 저작권(copyright)이 저작자 보호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과 달리 '카피레프트'는 이용자 쪽에 중심축을 놓고 있는 점이 다르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초석을 놓은 것이 스톨만이었다면 가시적인 결과물은 만들어낸 것은 핀란드 청년인 리누스 토발즈였다. 토발즈는 1991년 리눅스 커널을 공개하면서 저 유명한 '펭귄 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 "마음만 먹었다면 빌 게이츠-스티브 잡스처럼 됐을 것"
 
뉴요커는 'GNU 선언문' 30주년을 맞아 리처드 스톨만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스톨만은 여전히 휴대폰을 쓰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생활하고 있다. 
 
스톨만은 뉴요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플래시 플레이어는 이용자를 추적하며, 스카이프는 미국 국토안보국(NSA) 사찰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세상이 늘 그렇듯, 스톨만의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은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많은 기업들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사회 곳곳에 조금씩 스며들어 있다. 뉴요커는 "세계 곳곳의 정부 기관, 학교, 기업들은 자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인터넷 아카이브,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위키피디아 같은 곳에선 GNU/리눅스 시스템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요커는 또 "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스톨만은 손쉽게 스티브 잡스, 래리 엘리슨, 빌 게이츠처럼 됐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세상 사람들의 상식적인 삶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스톨만. 그가 생각하는 행복은 뭘까? 뉴요커는 리처드 스톨만의 행복론을 전해주는 것으로 긴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내게 행복은 자신에 대해 좋다고 느끼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이 결합된 상태다. 내게 좋은 감정을 갖기 위해선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