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백준 IT칼럼니스트 baekjun.lim@gmail.com
 
지난 여름에 회사에서 몇 주 뒤에 있을 봉사활동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봉사의 내용은 뉴왁(Newark)에 있는 한 마을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건설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봉사자를 모집하는 메일은 흔해서 무심코 넘어가곤 했는데, 놀이터를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이 관심을 끌었다. 그것도 뉴왁이었다. 뉴욕과 발음이 비슷해서 종종 혼동이 되기도 하는 뉴왁은 뉴저지에서 가장 큰 도시로 손꼽히는 내륙도시다.

 

많은 회사와 기관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1970년대에 있었던 흑인폭동 이후로 급격한 슬럼화가 진행되어 낮에도 다니기 어려운 위험한 도시로 몰락하고 말았다. 최근에 새로 당선된 시장들이 뉴왁을 복구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대학, 박물관, 기업들이 속속 되돌아오며 발전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크고 작은 강력사건이 끊이지 않는 위험한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

 

봉사활동의 내용은 뉴왁 안에서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동네에 사는 꼬마들이 집에서 걸어 나와서 안심하고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프로젝트였다. 몇 주 뒤에 봉사활동에 참여한 나는 여러 회사에서 자원한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해서 리더의 지휘에 따라 각자 맡은 일을 수행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6시간 만에 맨 흙바닥 위에 아늑하고 예쁜 놀이터를 만들었다. 내가 맡은 일은 놀이터 바닥에 50센티 정도 깊이로 깔 바닥재를 나르는 일이었다.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 커다란 트럭이 와서 멀치(mulch)라고 부르는 부드러운 나뭇조각 가루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는데,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삽과 마대자루를 이용해서 멀치를 조금씩 놀이터의 바닥에 부어서 평평하게 만드는 일을 수행했다.

 

한 여름의 땡볕 아래에서 진행된 일이라서 한 두 시간이 지나자 온몸의 힘이 빠지면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삽질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 작업이 모두 끝나고 동네 경찰서 소장, 소방대원들, 유치원 교사 등이 참여해서 간단한 테이프커팅 행사를 가졌다. 동네의 작은 꼬마 아이들이 나와서 고마움에 답하는 노래를 부르는 순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놀이터 뒤의 찻길로 매우 터프하게 보이는 흑인이 모는 차가 와서 빨간불 앞에 멈추어 섰다.

 

그의 차에서는 변조한 스피커를 타고 굉음에 가까운 노래가 흘러나왔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그의 우람한 팔뚝이 차와 함께 흔들거렸다. 아이들의 가냘픈 목소리는 귀를 찢는 듯한 노래 소리에 파묻혔고 모두가 당황해서 차를 바라보았다.

 

그 때 멋진 제복을 갖춰 입은 키 큰 경찰소장이 매우 화난 표정으로 뒤를 돌아오며 차를 몰던 사람을 노려보았는데, 차를 몰던 흑인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계속 흔들었다. 하지만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거의 0.1초 만에 들리지 않게 사라졌다. 나오지도 않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던 그는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쏜살같이 차를 몰고 사라졌다.

 

요즘에는 대학입시에 봉사점수라는 것이 있어서 한국에서도 청소년들이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봉사의 본질이 점수를 얻기 위한 요식행위로 변질되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어려서부터 ‘봉사’의 실체와 본질을 경험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세계에서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것이 말하자면 일종의 봉사에 해당한다. 오픈소스는 재능을 기부하는 것이고 지식을 나누는 행위다.

 

하지만 오픈소스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해커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여는 축제라는 성격이 강하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해커들이 필요로 하는 도구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셜코딩포굿과 같은 곳은 이렇게 오픈소스와 사회적 필요성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메우기 위해서 등장한 사회봉사 단체다.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에서 활동을 하든지 아니면 소셜코딩포굿에서 안내해주는, 실제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활동을 하든지 (성공적인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명성’을 얻기 위한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소셜코딩포굿에 작성한 코드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와 달리 어느 누군가에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주도록 연결이 된다. 그러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조직이나 단체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필요하지만 개발자를 고용할 만큼 예산에 여유가 없는 비영리단체나 조직이다.

 

소셜코딩포굿과 취지는 비슷하지만 봉사나 기부의 영역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국한되지 않고 더 포괄적인 직업과 기술로 확장된 형태로 캐치파이어라는 사이트도 있다. 미국 사회는 대단히 살벌하고 잔혹한 자본주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지만 이와 같은 선의의 봉사단체가 사회 곳곳에 존재함으로써 척박한 분위기를 벗어나서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웹사이트를 살펴보면서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따져보다가 문득 한국에도 이와 같은 형태의 봉사와 기부가 존재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한 생각은 한국의 척박한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혹독한 작업환경 속에서 비현실적인 마감일, 반복되는 야근, 주말근무, 박봉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서 자발적인 봉사와 재능기부를 바라는 것은 최전방 비무장지대 GP에서 근무하는 병사에게 박사논문을 쓰라고 주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유가 있는 미국의 프로그래머들은 서로 나누면서 전보다 더 풍성해지고, 여유가 없는 한국의 프로그래머들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추고 경쟁하면서 전보다 빈곤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우울해졌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여유를 갖고, 쾌활하게 나누는 문화를 구축하는 프로그래머들이 있다는 증거도 많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떠나서 한국인에게는 오랜 역사적 유전자를 통해서 형성된, 역설적인 힘을 발휘하는 근성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