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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전 디자이너 | 2010. 07. 08
 

‘오픈’이 답인가.

북미시장에서 지난 1분기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애플 아이폰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360만 대 300만, IT 시장조사 전문업체 가트너의 보고다. 따라서 그 동안 개방형 플랫폼이 통제형 플랫폼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해왔던 측에서는그 주장에 사실적 근거를 더할수 있는 추세를 갖게 됐다.

하지만 다시, 오픈이 답인가.

불과 수년 전에도 전세계 핸드폰 시장의 제왕이었던 노키아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자사 스마트폰의 운영체제인 심비안을 2010년 2월 오픈소스로 전환했고, 그것은 2011년에 구체화되는 운영체제 발전계획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미들웨어 위주로 오픈된 체제인 안드로이드보다 더 오픈인 성격도 있으나, 노키아는 아직 그 오픈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아가 애플의 아이폰보다 더 통제성이 강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캐나다의 림(RIM)은 올해 상반기 전세계 5대 휴대폰 제조업체 중 하나로 등극했다. 오바마폰 블랙베리를 대표주자로 밀고 있는 림이 신생업체의 자본력, 기술력 약세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전용 스마트폰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과연 얼마나 지속적으로 운용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가 있으나, 전통의 강호 노키아가 추락하는 가운데 스마트폰 전문 제조 업체이며 다크호스인 림의 상승은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되는 바가 크다.

따라서 오픈은, 오픈’만’은 답이 아니다. 오픈을 택한다고 해서, 결코 승리의 왕관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일반적으로 쉽게 생각하는 것보다 오픈은 더욱 섬세한 전략이다. 오픈 전략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리눅스와 위키피디아를 생각해보자. 리눅스는 리처드 스톨만이 유닉스의 상용화에 대응해 1984년 시작한 GNU 프로젝트가 기대했던 대중화된 영향력을 보지 못하다가, 1991년 핀란드의 리누스 토발즈가 운영체제의 핵심인 커널을 제공하면서 그 잠재된 성장력이 폭팔한 예다. 위키피디아는, 본래 위키라는 소셜 웨어는 워드 커닝엄에 의해 1994년에 이미 개발이 되어 있었지만 제대로 활용이 되지 못하다가, 2001년 백과사전이라는딱 맞는 성장 모델을 찾아 브리태니커와 견줄 수준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만약 오픈이 더 싸고, 더 쉬운, 그래서 더 나은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지금 구글 안드로이드 폰이, 애플의 아이폰을 추월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단순 플랫폼의 성격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구글의 오픈 ‘동맹’ 전략이 효과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 불안했던 안드로이드 OS가 버전 2.2를 맞으면서 안정화되기 시작했고, 삼성의 갤럭시S 등 아이폰과 스펙 면에서 차이가 거의 없는 단말기가 등장했으며, 그동안 축적해놓은 안드로이드 앱 마켓의 경쟁력이 가시화됐고, HTC 등 신흥 스마트폰 제조 업체 등의 활약에 기인한 바가 큰 것이다. 그간 안드로이드 동맹 체제가 견고하지 못하여 애플의 ‘스마트폰=아이폰’, ‘잡스=혁신’에 맞서지 못했지만, 이제 상황이 조금은 반전할 국면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잡스와 애플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다소 치열하고 불리해진 스마트폰 시장의 상황을 태블릿, TV 등 새로운 시장에서의 또 다시 빠르게, 강하게, 그리고 압도적으로 치고, 뚫고, 미는 전략으로 극복하려 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구글의 오픈은 그냥 오픈이 아니라 ‘동맹’의 촘촘한 ‘스케일’에 의존하고 있으며, 애플의 통제는 그냥 통제가 아니라 스마트한 ‘스피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살벌한 개방과 달콤한 통제의 싸움이다. 그래서 이 싸움이 쉽지 않은 싸움이며, 단순한 플랫폼의 성격 차로 다른 모든 것들을 생략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전의 예에서 생각해보자. 보수적 자유주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은 그의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이솝 우화의 고슴도치와 여우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톨스토이의 여우이면서 고슴도치를 지향한 <전쟁과 평화>의 역사관을 설명한다.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통일적 사상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실패가 아니라 그가 추상적인 이념을 거부하고 사실적 예화들의 결합을 통한 역사의 실체를 증명하는 것을 목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벌린은 가볍게 쓴 것이었지만 이후 이 글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용이 되었고, 유명하게는 짐 콜린스에 의해서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의 한 장을 차지하게까지 된다.

원문에서 벌린은 현실은 고슴도치와 여우로 양분되기엔 너무 복잡하다고 했다. 톨스토이 또한 고슴도치이면서 여우를 꿈꾸지 않았는가. 인간은 사실 뿐만 아니라 이상도 가지고 있는 모순의 존재다. 따라서 고슴도치와 여우로는, 개방과 통제로는 앞서 쓴 것처럼, 현재의 스마트폰 시장이, IT가, 미래가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톨스토이가 여우이면서 고슴도치였듯 그들 또한 여우이면서 고슴도치이고, 고슴도치이면서 여우이기 때문이다. 벌린의 말을 빌리자면, 애플은 통제를 통해서 새로운 시장으로 개방을, 구글은 개방을 통해서 그 시장을 자신의 것으로 통제하기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방과 통제는, 그래서 한 단어로, 한 사고 틀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어도비 플래시 차단에 대해서 애플이 항변했듯이,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를 통합했다는 점에서 애플이 통제는 맞지만, 웹 표준화 지향에 있어서는 애플도 나름 오픈이기 때문이다. 광고 수익이 얼마인 지에 대해 명확히 공개하지 않는 구글에 비해서도, 수익 구조에 대해 나름 명확한 선을 그어주는 애플도 또 나름 오픈이기 때문이다. 오픈은 실현도 어렵지만, 그렇게 정체를 밝히기도 어렵다.

오픈이 답인가. 또 다른 예에서 생각한다. ‘망 개방성’(Net Neutrality)의 개념을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콜럼비아 로스쿨의 통신법 전문가 팀 우 교수는 2006년 슬레이트에 ‘잘못된 롱테일’(The Wrong Tail)이라는 글을 썼다. <와이어드>의 크리스 앤더슨이 쓴 <롱테일>(The Long Tail)의 비판에 초점을 맞춘 글인데, 앤더슨이 2004년에 쓴 ‘롱테일’이라는 아마존의 온라인 서점 등 IT 시장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관해 한정된 데 비해, 그의 2006년 저서는 거의 모든 사례에 롱테일이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롱테일 법칙은 다른 모든 법칙과 마찬가지로 한계생산비용이 ‘0′으로 수렴하고 수요가 다양하게 존재할 때만 성립이 가능하다. 단적인 예로, 팀 우가 관심이 많은 네트워크 공급자 영역에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과점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롱테일과는 거리가 멀다. 이상의 날개가 현실의 대기권을 벗어나지 않듯이, 이론의 적용도 현실의 환경을 제외시킬 수 없다.

그럼에도, 그래도 개방과 통제 플랫폼이 자꾸만 이슈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애플의 전적 때문일 것이다. 과거 맥2로 PC 상용화의 첫발을 들여놓았음에도 불구하고 MS와 인텔의 영리한 오픈 동맹 전략 앞에 무릎을 끓고 결국 황제가 실리콘밸리에서 할리우드로 유배되어야 했던 그 전적 말이다. 그러나 잡스가 그 동안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 30년 묵은 벤처 기업가는 여전히 배고프고, 그리고 더욱 영리하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아이튠즈, 아이폰, 아이패드, 그렇게 여우처럼 다양한 사업 시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잡스는 우직하게, 보수적 혁신주의자로서 캘리포니아의 남과 북의 통일,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의 결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구촌 정보 통합과 개방의 기치를 내세운 구글, 소셜 웹 유틸리티 회사를 지향하는 페이스 북과 다르게 애플의 사명은 애매하지만, 그러나 은연중 확실하다. 문학의 톨스토이처럼, IT의 잡스는, 여우의 재주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고슴도치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또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오픈을 그대로 정의하고 적용하는 것에 맹점과 한계가 많다면, 개방과 그리고 통제형 플랫폼의 싸움도 이론과 현실 간에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다시, 선택은 이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소비자의 결정에, 그들의 기호와 취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 그들이 곧 시장이고, 미래다.